어느 날, 아무 예고도 없이 내 동생이 도우넛화 되어 버렸다.
그 때 이후로 동생과는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어느 화제로 대화를 하건 결국엔 '인간이란 역시 중심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제멋대로의 결론을 내리며 나를 바라보곤 했기 때문이다. 도우넛화가 되지 않은 나를 묘하게 너그러운 눈길로 보는 것이다.
비오는 토요일 오후였다. 점심의 스파게티 그릇의 설거지를 끝내고 맥주를 마시며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도우넛화된 동생이 떠올랐다. 동생은 이제 '중심이 빈'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내 주변에는 동생말고도 꽤 여럿이 도우넛화가 되어 있다.
사실, 도우넛화 되는게 유행이 된지 네달이 지났다. TV의 아이돌 스타가, 도우넛화가 된 후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라 기뻐요. 라고 말했을 때부터다. 물론 동생은 그 아이돌의 도우넛화보다 먼저였기 때문에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어찌됐든 동생이 나를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은, 아무리 나라도 한숨이 나오는 일이므로, 도우넛화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했다. 문제는 '인간이란 중심이 비어있어야 한다' 라는 것으로, 이것은 결국 스파게티도, 맥주도 먹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중심이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게 도우넛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파게티나 맥주 모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인데, 그것을 먹지 말라는 것은 너무하다. 이것을 따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도우넛화의 핵심을 거부하는 일이 된다.
그러고보니 주변의 도우넛화된 인간들은 스파게티도, 맥주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뿐이다. 동생만 하더라도 내가 훌륭한 치즈를 구해 그렇게나 열심히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곤 했었는데 그 수고를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결국 맥주 두 캔째가 돼서야, 동생과의 대화와 스파게티, 어느 쪽도 소중하지만 역시 중심을 비워둘 수는 없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스파게티와 맥주는 아무리 먹어대도 '인간이란..'하는 결론은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 by 냐루키 | 2004/09/18 05:14 | 소설 | 트랙백(1) | 덧글(3)